1. 시어를 부른다...
내가 키우은 것은 붉은 울음
꽃 속에도 비명이 살고 있다.
가시 있는 것들은 위험하다고
누가 말했더라
오, 꽃의 순수여 꽃의 모순이여
죽음은 삶의 또 다른 저쪽
나도 가시에 찔려
꽃 속에 들고 싶다
장미를 보는 내 눈에서
붉은 꽃들이 피어난다.
----- 릴케의 말 중에서 -----
2. 장미차를 마시며
시쓰는 후배가 인도에서 사왔다며 건넨 장미차
보랏빛 마른 장미들이 오글오글 도사리고 있다.
잔뜩 오므린 봉오리를 감싸고 있는 건 연두 꽃판이다..
아홉 번을 다녀갔어도 후배의 연애는 봉오리째
차마 열리지 못했는데, 그게 늘 쓴맛이었는데..
---- 정끝별 님의 시 중에서 ----
3. 사람에게
한 송이 장미는
풍경이지만
벌에게는 ........
4. 까치발을 한 젊은 여자, 장바구니에 장미 한 송이를 담아간다
입양 가는 아이가 울음을 터뜨린다. 다산으로 요란한 골목
---- 마경덕님의 시어중 ----
5. 나 오솔길이 끝나는 곳에서 한숨 짓는다.
축제의 폭죽은 싸늘한 먼지로 사라지고 펄럭이던 혀와 술잔은
어둠의 얼룩으로 메말라 있다.
흩날리는 머리칼, 웃는 얼굴들, 마음의 은밀한 기타통을 울려대던 햇살의 관능적인 손가락
사랑은 늘 눈빛의 과녁 옆으로 미세하게 비켜나는 나비의 움직임 같은 것이었다.
바랜 꽃잎처럼 떠나버린 여인들의 자리, 그 여백만큼 갈라진 시간의 몸살만이 빠르게 그 육체들을 추억했다.
---- 유하 님의 시어중 ----
6. 세상의 아득한 곳에 서 있었던 적도 있었으리라
깊은 수면 속으로 헤엄치기도 하며
힘찬 지느러미가 달린 그대
맑은 눈빛을 따라 가면 수많은 꽃잎들
세상은 온통 붉은 지느러미 출렁이며 흩어지네
푸르른 바다 속, 셀 수 없는 꽃 들이 만발했네
---- 김영자 님의 시어중 ----
7. 조경사의 실수 일까요.
붉고 탐스런 넝쿨장미가 만발한 오월,
그 틈에 수줍게 내민 작고 흰 입술들을 보고서야 그중 한포기가 다른것을.....
그토록 오랜 세월, 얼크러설크러졌으면 슬쩍 붉은 듯 흰듯 잡종 장미를 내밀 법도 하건만 틀림없이
제가 피워야 할 빛깔을 기억하고 있었습니다.
---- 반칠환 님의 시어중 ----
8. 우울한 날은
장미 한 송이 보고 싶네
장미 앞에서
소리내어 울면
나의 눈물에도 향기가 묻어날까
감당 못할 사랑의 기쁨으로
내내 앓고 있을때
나의 눈을 환히 밝혀주던 장미를
잊지 못하네
내가 물 주고 가꾼 시간들이
겹겹의 무늬로 익어 이쓴 꽃잎들 사이로
길이 열리네
---- 이해인 님의 시어중 ----
9. 가시가 없는 장미는 장미가 아니다
동그라미 탁자 위 유리꽃병 속에서도 모진바람 불어 지난
담벼락 밑에서도 너의 모습 변함없이 두 눈이 시리도록
매혹적인 것은 언제든 가시를 곧추 세우고
아닌 것에 맞설 용기가 있기 때문,
아니라고 말할 의지가 있기 때문
꽃잎은 더없이 부드러워도
그 향기는
봄눈처럼 황홀하여도
가시가 있어서
장미는 장미가 된다
---- 홍수희 님의 시어중 ----
10. 눈먼 손으로
나는 삶을 만져 보았네.
그건 가시투성이였어.
가시투성이 삶의 온몸을 만지며
나는 미소지었지.
이토록 가시가 많으니
곧 장미꽃이 피겠구나 하고.
장미꽃이 피어난다 해도
어찌 가시의 고통을 잊을 수 있을까 해도
장미꽃이 피기만 한다면
어찌 가시의 고통을 버리지 못하리요
---- 복효근 님의 시어중 ----
10. 나는 세상의 모든
장미를 사랑하지는 않는다
세월의 어느 모퉁이에서
한순간 눈에 쏙 들어왔지만
어느새 내 여린 살갗을
톡, 찌른 독한 가시
그 한 송이 장미를
나는 미워하면서도 사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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