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의 전반기/병산 서원편 2009

병산서원에 들르다..

호치민의주니 2009. 3. 4. 23:06

 병산서원이 설립된 유래

 

 고려 때, 안동의 풍산현에 풍악서당이 있어 지방 유림의 자제들이 모여 공부를 하고 있었습니다.

 

 이후 고려말, 공민왕때 홍건적의 난이 일어나 왕의 행차가 풍산을 지날무렵, 그곳 풍악서당에서 유생들이 난리 중에서도

       학문에 열중하는 것을 보고 크게 감동하였다고 합니다.

 

 이때, 많은 서책과 사패지(賜牌地-호패와 땅)을 주어 유생들을 더욱 학문에 열중하도록 격려 하였습니다.

 

 이후, 약 200년이 지나면서 서당 가까이 집들이 많이 들어서고 길이 생기며, 차츰 시끄러워 지면서 유림들이 모여 서당을

       옮길 것을 물색하고 있었습니다.

 

 이때, 마침 서애 류성룡선생께서 부친상을 당하시고 하회에 와 계실 때였기에 유림들은 그 일을 선생에게 문의하였다 합니다.

 

 서애선생께선 그 문의를 듣고 병산이 가장 적당할 것이라고 권하게 되었고 유림들은 선생의 뜻에 따라 서당을 병산으로 옮기고

       "병산서당"이라고 고쳐 부르게 되었습니다. (1572)

 

 임진왜란으로 불에탄 서당을 다시 중건하였고(1607), 사당 '존덕사'를 건립하면서 서원이 되었습니다.(1610)

 

 그후 병산서원은 지방교육의 일익을 담당하였고, 많은 학자를 배출하였으며, 1868(고종5년) 흥선대원군의 서원철폐령 때에도

       사라지지 않은 47개 서원 중 하나가 되었습니다.

 

 병산서원 :

 

병산서원은 조선시대의 대표적인 유교적 건축물로서, 류성룡(柳成龍)과 그의 셋째아들 류진(柳袗)을 배향한 서원입니다.

 류성룡(柳成龍)선생이 살아계실 때 제자들을 가르치던곳. 류성룡 선생의 문집을 비롯해 각종 문헌 1000여종 3000여책이

       소장 되어 있습니다.

 선생이 돌아가신 후 선생의 제자들과 유림이 뜻을 같이 하여, 서원 안에 사당(존덕사)을 세우고 위패를 모셔서 선생의 학덕

       을 이어받고  추모하며 향사(제사)를 올리던 서원입니다. 이 제사는 지금도 이어지고 있습니다.

 

 

 

 

 

 

 

 

 

 

 

 

 사인교

 

 

 

 

 

 벌집

 

 

 

 

 

 오래된 담쟁이.

 

 

 

 

 

 서원의 설명....

 

 

 

 

 

 병산서원 현판과 입교당

 

 

 

 

 

 

 

 

 

 

 

 

 

 

 

 

 2001년도에 병산에 처음들렀었다..

 그때는 필름카메라를 가지고 들렀기에 사진 자료가 없어 다시 한번 마음먹고 들른것이다...

 이곳은 하회마을에서 직선거리는 4Km이고 차로로 오게되면 6Km떨어저 있는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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