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의 전반기/도산 서원편 2009

시사단과 도산서원 둘러보기...

호치민의주니 2009. 3. 4. 11:05

 

 연륜을 알수가 없다 하며 잘라보아야만 연령을 알수 있다고 한다....

 그런 고목에도 새순이 돋는다. 봄이 왔다

 

 역사를 말하고 싶어...

 

 시사단

 도산서원의 강 건너편에 건립된 비각, 조선시대 지방별과를 보였던 자리를 기념하기 위하여 세운것이다. 정조대왕께서 퇴계 이황선생의

 유덕을 추모하여 1792년에 관원 이만수를 도산서원에 보내어 임금의 제문으로 제사를 지내게 하고 그 다음날 이곳 송림에서 어제로 과거를

 보였는데 응시자는 7천명에 달했다고 한다. 비문은 당시 영의정인 번암 체제공이 지었다. 안동댐 수몰로 송림은 없어지고 단만이 현위치에

 서 지상 10m 높이로 축대를 쌓고 그위에 과거의 자리를 표해두고 있다.

 시사단을 줌인해서..

 

 낙동강과 고목들...

 

 나무가 베어진 자리에...

 

 수령을 정확히 알수없다는 고목.

 

 영락재의 출입문...

 

 하고정사의 뜰에있는 말라버린 고목

 

 옥진각에서 바라보니 영락재 담이 보이고

 영락재 : 도산 서당과 같은 시기에 건립된 건물이다. 서원의 아래쪽에 위치하며, 담장이 둘러져 독립된 공간으로 되어있다.

             서당의 제자들을 위한 기숙사로, 퇴계의 제자 정사성이 입학할때 그의 아버지가 지어서 기부한 건물이다. 온돌방의 서쪽 반깐을

             비워 아궁이를 설치한 점이 특이하다. 정면 3칸, 측면 1칸의 단정한 건물로 현판 글씨는 퇴게선생의 친필이다.

 

 옥진각에서 상고직사 오르는 계단

 우측에는 하고직사가 있고 좌측에 있는 옥진각이다.

 옥진각 : 도산서원은 1969년 부터 정부의 고적 보존정책에 따라 성역화 대상으로 지정되어 대대적인 보수를 하였다. 이사업의 일환으로 건립

 된 옥진각은 퇴계선생의 유물전시관으로 1970년에 완공하되었다. "옥진"은 " 집대성 금성옥진"을 줄인말로 '집대성 했다는 것은 금소리에

 옥소리를 떨친 것이다'라는 의미이다.

 옥진각에는 퇴계 선생이 생전에 쓰던 베개와 자리를 비롯한 많은 유물이 전시되어 있다. 또 매화벼루, 오도 청려장, 매화등, 투호 등과 함께

 혼천의도 전시되어 있다...

 

 그러나 개인소견으로 조금 아쉬운것은 채색과 건물 형태가 조금은 이질감이 느껴진다는 것이다...나만 그런걸까.

 그래서 그런지 카메라가 가지 않는다..물론 사진이 없다...